글로벌 엘리트는 글로벌 엘리트대로, 이주 노동자는 이주 노동자대로, 청년 실업자는 청년 실업자대로, 흔히 이야기하는 사랑은 그들에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앞에서 얘기했듯이, 가

글로벌 엘리트는 글로벌 엘리트대로, 이주 노동자는 이주 노동자대로, 청년 실업자는 청년 실업자대로, 흔히 이야기하는 사랑은 그들에게 불가능하게 되었다. 물론 앞에서 얘기했듯이, 가족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여성과 어린이에게, 가족을 구성할 수 없는 사람에게 눈물과 한숨을 뽑아내는 그런 제도가 아니었느냐, 언제 그런 사랑이 존재하기는 했었느냐는 냉소적인 비판도 당연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런 사랑이 존재한다고 믿으며 그것을 가치로 받아들이는 상황이어야, 사랑을 민주화하고 가족주의를 넘어 사랑과 우애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연대를 꿈꾸고 주장할 수 있다. 사람과 사랑을 가치로 여긴다는 말은 그것을 위해 내가 무엇을 희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지금은 사랑을,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냉소하는 시대이다. 이렇게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에 이제 우리는 서로 사람과 사랑을 소비할 수밖에 없다. 이런 시대에 누가 사랑 때문에 직업이나 다른 기회를 걷어찰 수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나는 형석이나 그의 여자 친구를 쉽게 비난할 수 없었다. _ 엄기호,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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