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가을학기 발표물.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한겨레출판

2006년 가을학기 <텍스트와 문화>
法 20300724 전덕규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1. 작가 – 박민규(朴玟奎)

1968년 ~ 살아있다. 울산광역시 출생. 학성고 졸업.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졸업. 졸업 후 2년 조금 넘게 광화문에 위치한 해운회사에서 근무, 이후 <베스트셀러>라는 잡지사에서 근무. 타이슨과 홀리필드의 경기를 관람 중, 타이슨이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는 장면을 보고, 타이슨의 심정에 몰입. 갑자기 소설이 쓰고 싶어졌고, 참으면 병될 것 같아서 아내에게 말한 후 소설을 썼다고…. 박민규는 말했다.

– 수상내역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로 제 8회 한겨레문학상 수상.
2005년 『카스테라』로 창비 주관의 제 23회 신동엽창작상 수상.

– 작품내역
2003년 지구영웅전설 – 문학동네
2003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 한겨레 신문사
2005년 카스테라 – 문학동네
2006년 핑퐁 – 창비

2. 줄거리

1982년 즈음, 곧 중학생이 되는 나는, 동창이며 같은 중학교를 가게 될 조성훈과, 나란히 우수상과 6년개근상을 받을 정도로 우수한 학력으로 졸업한다. 무엇보다, 알파벳을 외우는 큰 머리를 가지고 있다. 당시에 한국에서도 ‘프로야구’ 라는 것이 시작되었고, 내가 살고있는 인천에는 ‘슈퍼맨’을 마스코트로 한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야구팀이 결성된다. 나는 다른 구단의 마스코트보다 단연 강력한 파워를 자랑하는 슈퍼맨이 마스코트라는 이유로 삼미의 우승을 점친다. 또한 프로야구선수이면서 정장을 입고 다니는 삼미의 선수들을 보면서 평범한 기자 클라크를 연상한다.
하지만, 프로야구의 들뜬 열기와는 달리 삼미는 연달아 패배하여, 인천의 어른들에게 야구는 외면받는다. 리틀 삼미슈퍼스타즈인 나와 조성훈과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5명의 친구들과 함께 삼미의 패배를 이유로 늙어가기 시작하였고, 82년 전기리그에 삼미는 30패를 기록한다. 여름이 지나자, 리틀 슈퍼스타즈 회원 2명이 MBC 청룡으로 변절하였고, 3명의 회원은 야구에 흥미를 잃어 탈퇴하게 되었고, 리틀 슈퍼스타즈는 조성훈과 나 2명만 남게 되었다. 삼미는 82년 후기 리그에서 5승 35패라는 최악의 성적을 기록한다. 27명의 선수 중 11명을 방출하고 새로운 선수들을 영입한, 삼미는 83년 1패 차이로 우승을 놓치는 쾌거를 이룩했으나, 다시 만년 최하위 팀으로 내려간다. 나와 조성훈은 그 충격으로 우울한 소년이 된다.
삼미의 고별전을 보고, 나는 소속이 인간을 바꾼다는 결론에 이르렀고, 열심히 공부하는 평상시의 생활로 돌아간다. 친구 조성훈을 통해 민주주의와 혁명의 꿈을 키웠으나, 대통령 선거 결과를 접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는 대중을 보면서, ‘우리’에 회의를 느낀다.
이후 조성훈과 함께 1류 대학에 입학하게 된 나는 어렸을 적 삼미의 경험 때문인지, 실패의 경험이 없고 언제나 성공만을 해온 친구들의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한다. 수업을 듣고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활로 친구 조성훈의 말처럼 ‘졸업장만 따는’생활을 한다. 친구 조성훈은 친족간의 재산 상속 문제와 부모님의 사고로 일본으로 간다.
1류대학을 졸업한 나는 직장에 들어가게 된다. 결혼을 하였으나, 일로 인해 가정생활에 충실하지 못하였다. 결국 이혼을 하게 되고, 그 직후 IMF의 여파로 직장을 잃게 된다.
내가 이혼 직후에 조성훈은 한국으로 돌아왔다. 조성훈은 자신 특유의 설을 풀어내며, 나에게 조언과 위로를 한다. 나는 다시는 예전의 직장생활 같은 삶은 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며, 조성훈과 함께 삼미슈퍼스타즈 팬클럽을 조직하여 야구를 즐기는 것을 마지막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3. 첨부 발표 자료

  1. "<지구영웅전설> <카스테라> <핑퐁>의 소설가 박민규 : 김혜리가 만난 사람 : 씨네21" 전문
  2. "대한문화 2004년 봄호 기획특집 – 2004년 봄, 젊은 소설을 읽다" 에서 부분발췌.
    발췌부분

    필요 없음을 위하여

    – 천운영, 이만교, 박민규의 소설들

    글 구중서 _ 평론가. 1936년생. 평론집 『한국 문학과 역사의식』 『문학과 현대사상』 『역사와 인간』 등.

     박민규   

    사람이 이 지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히 한 가지 가능한 일이 있다. 소설을 쓰는 것이다. 그것은 허구이니까. 그런데 있을 수 있는 일(개연성)이라는 것이 기준이고, 그래서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 문제이다.

    당대마다 삶의 현장이 다르고 거기에 대응하는 의미가 다르다. 70년대의 산업화, 80년대의 민주화 투쟁, 90년대의 사회주의 세계권 붕괴, 그리고 2000년대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특징일 것이다. 물론 문학예술이 이 시대별 특징을 기계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관심이 지난 시기와 다르게 상당 부분 나타난다는 것이다.

    어느 시대에나 자연은 자연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이 변함없는 것과 당대적으로 변한 현실이 씨줄과 날줄로 짜이면서 역사의 폭을 이어간다.

    2000년대 전반기쯤에 발표된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살펴본다. 천운영의 「명랑」 「멍게 뒷맛」, 이만교의 「너무나도 모범적인」 「나쁜 여자, 착한 남자」, 박민규의 장편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대상으로 잡는다.

    (중략)…

    또 하나 자본주의 사회를 그린 장편소설로 박민규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 있다. 여기에서도 주인공의 출발점은 소년시절이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주인공 소년이 지방 도시 인천의 명문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아버지가 아들의 책상머리에 가져다 붙여 놓은 말이다. 그런데 이 무렵 한국에 프로야구 구단의 창단 열풍이 불기 시작한다. 야구 그 자체야 좋다. 정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다 똑같은 놈들이야. 전부 도둑놈들이야”하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야구에 대해서는 그런 말이 성립되지 않는다.

    “정치와는 달리 야구에는 원칙과 룰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스포츠의 순수한 매력이다. 인천에 연고를 둔 삼미 슈퍼스타즈 구단이 창단되었을 때 이 지역 중학생들을 비롯해 주민 전부가 열광했다. 경기에서 이길 때에도 질 때에도 소년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이것은 ‘프로’ 야구였다. 바야흐로 한국에도 프로의 시대가 온 것이다. 야구는 프로 야구가 되고, 인간도 프로급 사원 즉 전문 인력이 되어야 했다.

    “이젠 프로만이 살아남는다.” “회사에서 출세를 하려면 가정을 버려야 한다.” 이렇게 준열한 압박의 시대가 왔다.

    가정에 무심해진 주인공은 아내와 이혼까지 했지만 제 3차 구조조정은 넘기지 못하고 실직자가 되었다. 그 때부터 주인공 ‘나’는 퇴직금을 까먹으며 쉬게 되고, 허드레 아르바이트도 해 보면서 우연히 사귀게 된 여인은
    3명의 애인과 7명의 섹스 파트너가 있다고 스스럼없이 밝힌다. 나도 놀라지 않는 척하면서 그 여자와 관계를 갖는다.

    창단 당시의 삼미 구단은 기록적으로 패배를 일삼다가 결국 해체되었지만 그것은 잊을 수 없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야구였다. 일본 히로시마 지역 후루에 마을의 야구도 그런 것이었다. 필요 이상으로 속구를 던지는
    투수도 없고 무리를 하는 타자도 없고, 강변 기차역 창공을 날아가는 작고 때 묻은 야구 공. 이것은 다만 신명의 축제 마당이었다.

    주인공과 친구 조성훈과 일본인 인텔리 노숙자 사카에는 함께 편하고 자연스러운 야구를 사랑하는 낭만적 구단을 재구성한다. 저 삼천포 바닷가 좁은 잔디밭에 전지훈련이라고 가서 그들은 구성원 모두의 거침없는 자유행동과 유희를 연출한다. 여기에서 신기할 정도로 인간성 회복의 행복한 성과를 거둔다. 주인공 나는 이혼했던 아내와 재결합한다.

    장인으로부터 한 푼의 돈도 받지 않았고, 나도 아내도 정말로 서로를 사랑하고, 아끼게 되었다. 첫 결혼 때에 비해 우리의 재산이 너무나도 줄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우리는 참으로 간단하게 행복할 수 있었다. 가진 게 간단하면 인생은 간단해진다. 그리고 아내는 그 간단한 인생의 한복판에서 임신을 했다. …… 작고도 힘찬 생명의 심장박동을 느낄 수 있었다.

    2000년대 전반 무렵에서도 소설은 또 이렇게 귀결되기도 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자본주의 문명을 그 어떤 소설보다도 구체적으로 다루었다. 일류대학 졸업, 엘리트 사원 코스, 이혼, 숙명의 감원 선고, 허탈한 휴식, 우유배달 아르바이트, 문란한 이성 체험, 홈리스 노숙자 신세, 이렇게 참담하면서도 이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본질적으로 자포자기에 떨어지지 않는다.

    어린 시절, 지는 것을 일삼던 고향의 자연스러운 야구에 울며 사랑하던 인간 본성에 돌아간다. 필요 이상으로 애쓰지 말자. 초인적인 속구와 홈런이 왜 꼭 필요하다는 말인가. 신선하고 경쾌하게 창공을 나는 볼의 탄력
    자체에서 함께 즐거워하면 되지 않는가. 그 자연의 요람이 그립다. 그 시절 그 곳으로 돌아가 간단하게 살자. 가난해도 오히려 더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자. 그렇게 할 수 있다. 인간은.

    이 개연성, 이 가능성, 이것이 자본주의 시대라고 해서 완전히 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무조건 최악이라든가 끝장나고야 말 자체모순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역사상 실패했다. 정당한 사유제는 자유권에 속하며, 시장경제는 창의와 능률을 위해 거부될 수 없다. 다만 부도덕한 독점화, 빈부격차의 증대 현상만은 견제해야 한다. 누가 하는가. 문학예술과 종교와 시민운동과 제 3세계운동이 해야 한다. 미국이 절대적 제국인 것도 아니다. 미국은 경제적 적자국가이며, 약소국의 자살공격 앞에 떨고 있다. 문학예술이 변함없이 인류의 진실과 평화를 창조해 나아가야 한다.

  3. "대산문화 2004년 여름호 기획특집 – 젊은 소설가는 말한다." 에서 부분발췌.
    발췌부분

    박민규

    조까라, 마이싱이다!

    글 박민규_소설가. 1968년생. 소설 『지구 영웅전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등

     

    1. 도대체 마이싱이란

    학창시절 학교를 주름잡던 1년 터울의 선배가 있었다. 그 형의 별명은 ‘마빈 헤글러’였다. 실제로 머리를 빡빡 깎은 그에겐 언제나 화려한 소문이 뒤따랐었다. 즉 3대 1이라든지, 칼을 든 2명이 포함된 4대 1이라든지. 그러나 그 소문에 비해 펀치는 한결 부드러운 것이어서(맞아봐서 안다) 나는 그가 마빈 헤글러라기 보다는, ‘마빡 헤글러’일 뿐이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결국 하루는, 그래서 넌지시, 담배를 피고 있는 그에게 물어보았다. 형, 지난 번에, 그러니까 4대 1 그거요 그거 어땠어요? 묵묵히 하늘을 응시한 채, 선배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건네왔다. 조까라, 마이싱이다. 북북, 꽁초를 담벼락에 부비며,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우선 말의 뜻을 짐작조차 못하겠거니와, 묘하게도 그 말을 듣는 순간 그가 과연 ‘마빈’일 수도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였다. 어쨌거나, 그런데 도대체 마이싱이란? 도대체 마이싱이, 뭐지? 나는 궁금했으나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나는 작가가 되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대부분의 일들이 그러하듯 그냥 어느 순간, 무작정 글이 쓰고 싶었다. 요약하자면, 나에겐 그것이 전부이다. 무작정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온 것도 보름 전의 일이었다. 어디신가요? <대산문화>입니다. 요는, 젊은 작가의 변(辨)을, 듣고 싶다는 얘기였다. 평소, 이를테면 학술재단 같은 곳과 교류를 하면 작가로선 끝장이란 소신을 갖고 있었는데, 예, 예 잘도 대답을 하고, 쓰겠노라 동의를 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바로 그 순간 심하게 이 글을 쓰고 싶었고, 바로 그 순간 아무런 까닭도 없이 ‘조까라 마이싱’의 기분이 들어서였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바로, 그래서다.

    2. 너가 당룡이냐

    우선 나는, <대산문화>로부터 네 가지의 질문을 받았다. 해서, 짧게, 그것부터 답하고 보는 게 도리란 생각이다. 심사, 숙고 해보았지만, 4가지 질문 모두가 도무지 긴 대답을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내 무식(無識)의 소산이거나, 정답이거나. 정답은 늘, 짧고 간략한 것이기 마련이라고, 나는 언제나 생각해왔다. ①자신의 소설이 지향하는 바는, 혹은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답. 모른다. 내가 소설을 쓰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소설이, 나를 쓰고(用)있다. 그래서다. ②기존의 소설과 자신의 소설이 다른 점은 무엇인지? 답. 마치 ‘인류와 자신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의 질문을 받은 느낌이다. 나(내가 쓴 소설)는 유전자의 리바이벌에 불과할 따름이다. 흘러, 가자. 흘러가서, 전달, 하자. ③독자나 평론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오해, 오독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답. 누구에게나, 꼴린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④자신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배문인들의 평가(<대산문화> 2004년 봄호 기획특집 참고)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답. 수고하셨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도, 열심히 하겠다.

    써놓고 보니, 마치 4대 1의 싸움이라도 한 듯한 기분이다. 그러니까 4대 1 그거요 그거 어땠어요? 묵묵히 하늘을 응시한 채, 나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건넨 건가? 잘, 모르겠다. 어쨌거나 대산의 질문들을, 나는 그런 분위기로 해석하고자 한다. 즉 70년대의, 이소룡 영화에서의 한 장면처럼, 말이다. 너가 당룡이냐? 그렇다. 내가, 당룡이다.

    3. 푸트웍 좀 해보자, 개새끼야

     박민규

    이른바 ‘등단’을 한 지, 이제 꼭 1년이 지났다. 소설이 무언지는 애당초 몰랐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란 생각이다. 그것이 나란 인간이다. 그냥 쓰고 싶고, 쓰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다. 시간이, 없다. 오로지 그럴,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꼴린 대로 쓸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 글을 쓰는 것인가? 그 이유를 나는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깨닫고 있다. 그러니까 돌대가리. 이, 마빡만 헤글러!

    이유는 짜증이다. 짜증, 이라기보다는 하소연이고, 하소연, 이기보다는 외로움, 같은 것이다. 이런 얘길 할 수 있는 지면이, 도대체 없었다. 그래서다. 그래서 이것은 젊은 작가의 변(辨)일수도 있고(참, 어지간히도 젊다!), 변(便)일 수도 있다. 왜 그럴까? 이제 겨우 2권의 책을 냈을 뿐인데, 그리고 구만 리의 앞길이 남아 있는데. 바로, 그래서다. 이 구만 리의 앞길을, 또 다른 누군가가 밟고,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나로선 길을 가야 할 이유가, 또 그들을 위해 길을 열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래서다. 문단인지 평단인지, 아니 세상이여! 우선 말하겠는데 제발 좀 문학의 위기, 소설의 위기라고 떠들지 마라. 호들갑 좀, 떨지 말아라. 나는 어디 핵이라도 떨어진 줄 알았다. 쉰 소리 하려면 집에서 쉬어라, 나오지 마라. 그것이 문학을, 또 우리를 도와주는 길이다. 단언컨대, 지금의 위기는 문학의 위기가 아니다. 문학의 위기를 떠드는 놈들의, 위기일 따름이다. 아이고 귀야. 귀에 슨 녹슨 못을 뽑아내며, 나는 중얼거린다. 너무 그러니까 니들이 마치 ‘문학’ 같잖아? 니들이 ‘문학’이냐?

    두 번째, 궁상 좀 떨지 마라. 즉 그것이 이곳의 풍경인데, 마치 위기론에 이은 예비군 훈련이나, 민방위 훈련을 지켜보는 기분이다. 작가는 잡문으로 뺑이를 쳐야 하고, 또 그걸 당연한 걸로 생각한다(생각해야 한다). 안 팔려요. 안 팔리면 어쩌죠? 몇 푼의 계약금에도 손을 내밀기가 민망하고, 생활은 점점 좀스러워진다. 요는, 위기를 떠드는 놈들이 이 땅의 작가들을 자꾸만 작게 만든다는 것이다. 좀스럽고 비참하게 만들며, 왜소하고 말랑말랑한 인간으로 만들어 버린다. 몇 푼의 선인세와 생활비에 손을 떨고 연연해야 하는 인간이, 과연 얼마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글이라면, 우선 나부터도 읽고 싶지가 않다.

    세 번째, 근친상간 그만하자. 내가 볼 때 이 땅의 소설이 망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각설하고 찢어지자. 그 동안 즐거웠다. 어찌나 문단속을 잘 했던지, 이곳에는 여지가 없다. SF도 추리도 공포소설도, 심지어 제대로 된 하이틴 로맨스도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아아 줄리엣, 우리 아버지들은 언제 죽을까? 오오 로미오, 오빠가 자꾸 나를 건드려요. 헤이 유! 근친상간이 바보를 만든다는 거, 꽤나 알려진 의학 상식 아닌가? 쪽 팔려, 박수 좀 치지 마. 어이, 저리 가! 접붙이지 마.

    네 번째, 거 참 말 많네! 거 참, 말이 많다고 나는 생각했다. 정말이다. 말이 많은 건, 어쨌거나 말이 많은 것이다. 그뿐이다. 지금껏 나는 네 개의 질문을 받고, 네 개의 답변을 하고, 네 개의 푸념을 늘어놓았다. 요는 무엇인가? 나는 당룡이고, 그냥 날 내버려두란 얘기다. 어떤 면(面)에서 세상은 분명히 달라졌다. 네가 당룡이냐? 끄덕끄덕. 삼가 한수를 배우겠소. 오호라 학익(鶴翼)의 품세를, 그렇다면 용호(龍虎)의 권세로! 쿵후라는 이름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비록 좋은 시절이었지만, 이제는 먼 옛날의 이야기이다. 마찬가지다. 문학이라는 이름만으로, 또 소설이란 이름만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숨을 죽이던 시절이 있었다. 좋은 시절이었지만, 먼 옛날의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나 역시 과거의 문학을 동경해 작가가 된 인간이다. 눈물이 날만큼, 그때가 그립다. 누군들, 품세의 아름다움을 취하고 싶지 않으랴.

    마치 문학처럼, 언제부턴가 복싱도 시시해진지 오래이다. 때문에 나는 이종격투기를 관람한다. 얼마 전 열린 이종격투기 대회에서의 일이다. 종이 울리자마자, KO로 승부가 난 경기가 있었다. 복서 출신의 패자는 습관처럼 푸트웍을 밟아보려다 불의의 기습을 당했다. 선공을 하지 말란 법은 없었지만, 뭐랄까 그런 기분이었다. 즉 삼가 한수를 배우겠, 에서의 ‘퍼벅’의 느낌. 정신을 차린 그의 표정에서 나는 그런 문장을 읽을 수 있었다. 푸트웍 좀 해보자, 개새끼야. 수건을 던지지 마라 안젤로 던디(수많은 세계 챔피언들을 길러낸 많은 저명한 복싱 트레이너)여. 나 역시 푸트웍 한 번 밟아보는 게 꿈이다.

        박민규의 소설들. 박민규는 『지구 영웅 전설』로 문학동네신인작가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장했다

    4. 조까라 마이싱!

    세상은 나의 문파와 나의 품세 따위에 관심을 접은 지 오래이다. 작가로서, 이제 나는 실제로 충격을 주고, 파괴하고, 저것을 쓰러트려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 이 싸움은 더욱 실질적이고(비록 폼은 없어도), 냉정한 것이 되었다. 약속대련과 근친상간을 벌일 여유가, 나에겐 없다. 나는 실제로 강해야만 하고, 또 강해지고 싶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세계의 룰은 이 땅의 문학에도 어김없이 적용되었다. 우루과이 라운드가 어디 농업만의 문제이겠는가? 이제 이 땅의 문학은 제조업인가 서비스업인가? 텍스트와 번역의 댐이 언제까지 이곳을 지켜줄 것인가? 수입인가 내수인가? 질문은 끝이 없고, 간략한 정답은 보이지 않는다. 간략하게 – 나는 정말이지, 강해야 한다.

    그래도 이 땅에 ‘작가’들이 있었다. 그래도 이 땅에 ‘소설’이 있었고, 나는 그 아름다웠던 싸움들을 가슴 속 깊이 저장하고 있다. 내게 힘을 주는 것은 바로 그들이고, 다름 아닌 그들의 소설이다. 경건하게, 나도 싸워나갈 것이다. 그 외의 문제라면, 몰라, 조까라 마이싱이 아닐 수 없다. 좋은 시절은 다 갔다는 느낌이지만, 어떤 면(面)에서의 세상은 또 분명히 좋아졌다. 지금 내가 쓰는 컴퓨터는 아폴로를 달에 착륙시켰던 컴퓨터보다 정확히 3배가 더, 뛰어난 것이다. 내 책상 밑으론 인터넷이 들어와 있고, 나는 더 이상 도서관이나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뒤적이지 않아도 된다. 이런 환경에서 당신을 화성에라도 보내줄 만한 소설을 쓰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조까라 마이싱이다. 큐빅 퍼즐을 맞출 때의 요령으로, 어떻게든 그 좋은 면들을 나는 맞춰나가야 한다. 이 글을 쓰는 사이 시인 구상이 이 별을 떠났다. 구상 선생님 편히 잠드세요. 당신의 싸움은 아름다웠습니다. 저도, 힘을 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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