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를 보게 된 경위
‘스탑다연’이라는 페이지 덕분에 소위 ‘다함께-대학문화 성폭력 사건’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사실 너무 오래된 해당 사건에 대해서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다. 다만 최황 작가와 백승호 편집자의 페이스북을 통해서 이작가가 괴롭힘을 당한다는 언급을 처음 접했다.
나는 조금 잔혹한 사람에 해당하는지 사실 7년이라는 기간의 장대함에 대해서 별 감흥이 없다. 중요한것은 이작가가 2차가해를 했는지 여부라고 생각했다. 잘못을 했다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던가 사과하는것이 맞다. 조금 먼 근래에는 몇 연예인에 의한 학폭피해를 폭로하는 사건이 몇건 있었는데, 수년이 지난 과거의 일을 피폭로자의 생계(연예계 활동)에 위협이 될 폭로가 온당하냐는 이야기는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큰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
이작가의 2차가해 여부
그래서 나는 2차가해가 있었는지 여부만 살펴보았다. 개별집단에 대한 정치적 해석과 상호비방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가운데, 여러 단체들의 입장을 다시 인용함으로써 논증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고, 명확한 원자료를 거슬러 올라가 검토하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 여긴다. 그에 대한 증거조차 없다면, 상호 주장의 차이를 정리하는 수준 이상을 할수는 없을 것이다.
피해폭로자(이하 A) 대리인이 증거라고 내어놓은 2013년 말과 2014년 사이에 이작가가 다함께에 제출했다는 문건에는 A에 대한 2차가해에 해당하는 부분을 찾을 수 있었는데 해당 내용은 아래와 같다.
“A의 성폭력 폭로의 경우, 특이한 지점이 분명히 존재했다. 피해를 호소한 A는 상당히 오랜 기간 동안 단체의 회원들을 매우 지치게 만드는 행동을 반복했다. 페이스북을 통해서 단체에 대한 지속적인 마타도어를 한다거나, 자신의 주변 회원들에게 신뢰성이 떨어질 정도로 지나치게 자주 자신이 당한 여러 가지 성폭력에 대해 언급한다거나, 심지어는 주변의 남성 동지들(B를 포함하여)에게 성추행을 하는 등의 행동들이 있었다. 더욱이 성폭력 호소글은 성폭력에 대한 호소 자체가 아닌, 다함께를 비방하기 위한 지점에 더욱 크게 방점이 찍혀 있어서 회원들의 공분을 더욱 부른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그 점을 감안하고서도 우리 단체의 대응은 상당히 미숙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에서 B는 가해자라는 누명을 뒤집어 쓴 것 뿐만 아니라 오히려 A에게 성추행을 당한 피해호소인이기도 하다.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당사자는 자신에게 쏟아지는 오명과 공격 속에서 심한 정서적 충격을 입고 침잠하기 쉽다. 이 경우 B는 피해자임에도 가해자로 낙인찍혔기에 훨씬 더 감내하기 가혹한 상황이었다. 실제로 B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으며, 사건 자체에서 도피하려는 태도를 여러 번 보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xx 동지는 B에게 직접 나서라고 다그친 것이다.”
“고통 속에서도 사회주의 활동가로서의 자신과 다함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추문에 맞서 싸우는 B에게 연대를 보내며, 활동공간에서 계속해서 이 추문을 접해야만 할 우리 회원들에게 이 글이 심심한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이작가는 ①A가 사람들을 지치게 만드는 행동을 반복했으며, ②기존에 성폭력을 많이 당해왔음을 발언해왔고, ③평소 남성들을 성추행했다는 주장을 했다. ④B가 다른 사건의 피해폭로자임을 밝혔으며, 더불어 ⑤’성추문에 맞서는’ B에 대한 지지의사를 밝혔다. 해당 주장은 개별 폭로사건과 무관한 개인 정보를 폭로함으로써 피해폭로자의 평판을 깍으려 시도하는 2차 가해이다. 이작가가 대리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해당 사건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증거로서 피폭로자를 방어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폭로자에 대한 적극적 공격으로서 2차가해를 행한 것으로 보인다. 해당 서술에서 ‘피해자중심주의’나 ‘2차가해’의 과도한 적용 등을 운운할 여지는 없어 보인다.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도서 절판과 관련하여
‘스탑다연’페이지는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가 이작가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스토킹을 했다며 여러 사건을 나열한다. 그 중에서도 페이지가 중요하게 언급하고 있는 사건은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이하 나말사) 도서 절판과 관련한 내용이다. 페이지에서 나열하는 사건 중, 대리인이 개입한 사건으로 인정하는2가지 사건이 있는데(절판건, SF협회 공문 건), 그 중에서 피해폭로자가 대대적으로 직접 나서서 개입한 사건이기 때문에 해당 페이지가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사건 때문에 이작가 또한 마음에 큰 상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이작가의 사과문이 작성된 바 있으며, 이를 근거로 이작가가 충분히 사과했다는 주장도 가능하기에 살펴볼 필요가 있다.
페이지에서 언급하는 내용은 필진으로 참여한 두사람 ①‘Kyungsuk Cho’ 라는 계정이 쓴 글과 ②’하민지’라는 계정을 쓰는 이가 ①을 공유하며 쓴 글, 그리고 ③여이연에 발송된 익명의 탄원서이다. 또 Na young활동가의 사과하라는 글에 대해 이작가가 언급하면서 쓴 글이 있는데, 해당 글에서도 ‘나말사’ 절판과 사과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①의 경우, 피해폭로자가 필진 개개인의 입장을 SNS에 공유해 줄것을 요구하였고 해당 요구가 강제력의 일종으로 작용하였음을 피력하고 있다. 출판사에 입장표명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가 오간 것으로 판단되는데, 피해폭로자 쪽에서 별다른 반론을 한 것은 찾을 수는 없었다.(반론 있다면 제보바람)
나는 이에 대해서 일반적인 갈등사건에서 피해자가 할 수 있는 가능한 요구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공개사과를 요구하거나, 사과를 받을 수 없을 경우 공신력있는 기관의 조사를 통해 진상규명 후 조사문을 공개요구하거나, 하다못해 관련자의 입장표명을 요구하고 이를 공론화 하는 것은 일반 갈등사건에서 쉽게 발견할수있는 요구들이다. 이러한 요구들이 ‘스탑다연’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 처럼 절판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강요와 위계 혹은 위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출판사든 필진이든 그들이 내는 입장(혹은 무입장이라는 입장)에 대한 사회적 평가 및 비판은 함께 작업한 이들이 부담해야할 몫이라 생각한다.
출판사는 절판결정을 내렸고, 이에 대한 입장문은 게시되었다. 해당 입장문에서는 피해폭로자가 주장하는 바에 대한 세부정황이 포착되었으며 절판을 결정했다고 말한다. 안타까운 것은 여이연의 입장문에서건 ①에서건 ②에서건, 해당 주장에 대한 선언만 있어 어떤 판단의 근거를 찾을 수는 없다는 점이다. 이를 지켜보는 내 입장에서는 결국 이작가의 2차가해여부에 대한 쟁점으로 다시 되돌아갈 수밖에 없다.
이작가는 Na young에 대한 반박글에서, ‘나말사’ 절판논의중에는 2차가해에 대한 논의범위의 한정이 있었다 말한다. 한정의 내용에 대해서 “여이연 측에서는 사건에 대한 공방을 좁히고자 했습니다. “이서영이 성판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느냐”가 공방의 핵심이 되었습니다.” 라고 서술하고 있는데, “이서영이 성판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는”지를 검토해 보자면, 그에 대한 입증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도서출판 여이연의 기록 중에서 오히려 이작가가 말하는 내용의 ‘한정’에 반하는 내용의 중간보고를 발견할 수 있었는데 해당 입장문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들어가 있다.
“따라서 피해자께서 제기하신 문제가 “당시 이서영씨가 피해자를 2차 가해했던 논리는 피해자를 성판매 여성이라고 말하며 피해자를 성폭력 피해를 호소할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비방한 것”만 해당된다면 이서영 씨의 소명으로 판단이 가능한 문제이지만, 그 외의 다른 2차 가해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라면 좀더 정확한 자료와 근거가 있어야만 판단이 가능하며, 이러한 사안에 대한 판단은 도서출판 여이연 만의 문제가 아니라 2차 가해를 규정하고 해결하려는 우리 사회의 합의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도서출판 여이연은 피해자가 제기하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세 가지를 고려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이서영 씨가 대리인으로서 했던 활동이 2차 가해에 해당되는지에 대해 논의를 할 것이며, 그에 따라 이서영 씨가 필자로 합당한지를 판단하여 개정판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만약 2차 가해 사실이 확정되어 이서영 씨가 이를 인정하고 사과할 경우,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의 활동 범위에 대해서 논의를 하고 합의를 도출할 것입니다. 세 번째는, 단행본 <<나도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는 <성판매 여성 안녕들하십니까> 기록팀이 기획 및 집필을 담당하고 도서출판 여이연은 책의 제작 및 유통 부분의 책임을 맡고 있으므로, 개정판 발행 여부에 관한 향후 논의 및 진행에서 <성판매 여성 안녕들하십니까> 기록팀과의 협의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도서출판 여이연의 중간보고에는 이작가의 대리인으로서 했던 활동 전반이 2차가해에 해당하는지에 관한 부분까지 논의할 것이라는 조사촛점에 대해 이미 말한 바 있다. 결국 다시 이작가의 2차가해여부가 중요해진다. 이작가의 반론에서처럼 “성판매 여성이라는 이유로 진술을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느냐”여부로 한정되지 않았다. 이작가가 기억을 잘 못한 것인지, 해당 논의범위에 대해 인지하지 못했는지, 고의로 논의범위를 축소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피해폭로자의 대리인에 의해 공개된 사과문에서 이작가는 “이 사실진술[1]을 받아들이고 공유”한 행위에 대해”도의적 책임”이 있다는 정도로 사과를 한정했고, 피해폭로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스탑 다연’의 문제적 주장
원자료와 사건들을 살펴보았을 때, 이작가는 2차가해를 했고, 사과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작가를 피해자에 위치시키고 그를 지지하는 해당 페이지가, 또 다른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A가 B를 성추행 했다는 사실이 판결로서 인정받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A는 B가 A의 피해폭로에 대응하여 제기한, ‘A가 자신을 성추행했다’는 B의 주장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하였으나, 법원에서 허위사실이라는 제기는 인정받지 못하고,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손해배상을 받았다. 그래서 ‘스탑 다연’은 ‘사실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므로 A가 B를 성추행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주장을 해당 페이지에서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판결문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률적 판단에서의 다른 이론이 여러가지 있을 수 있겠으나, 판례 하나를 들어보고자 한다. 대법원 판결 2017도15628에서는 민사재판에서 인정된 사실에 대해서 이에 반하는 내용을 담은 출판물이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죄’에 해당하는지를 다툰 판결이다. 민사재판에서의 사실인정에 대해 대법원의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민사재판에서 법원은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있는 사실관계에 대하여 처분권주의와 변론주의, 그리고 자유심증주의의 원칙에 따라 신빙성이 있다고 보이는 당사자의 주장과 증거를 받아들여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어서, 민사판결의 사실인정이 항상 진실한 사실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따라서 다른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진실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없는 과거의 역사적 사실관계 등에 대하여 민사판결을 통하여 어떠한 사실인정이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이후 그와 반대되는 사실의 주장이나 견해의 개진 등을 형법상 명예훼손죄 등에 있어서 ‘허위의 사실 적시’라는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쉽게 단정하여서는 아니 된다. 판결에 대한 자유로운 견해 개진과 비판, 토론 등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위헌적인 법률해석이 되어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당 판결은 민사재판에서의 사실인정에 반하는 주장을 한다고 하여 ‘허위의 사실 적시’ 구성요건에 해당한다고 쉽게 단정해서는 아니된다고 말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스탑다연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대법원의 판례에 따르면 민사재판에서의 사실인정이 ‘진실한 사실’에 해당한다고 단정할수는 없을 뿐더러, 스탑다연이 말하는 민사재판의 경우에도 ‘허위의 사실 적시’의 구성요건에 해당한다는 판단을 할 수 없기에 ‘사실의 적시’로 처리한 것을 ‘진실한 사실’에 해당한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더불어 설사 A가 B를 성추행 한 것이 진실이라 할지라도, B가 A를 성추행한 사건, 이작가가 A에 대한 2차가해를 한 사건과는 별개의 사건이다. 스탑다연이라는 페이지는 이작가에 대한 집단 괴롭힘을 막기 위해 생성된 페이지인데, ‘이작가에 대한 집단 괴롭힘에 대한 규탄’과 ‘A가 B를 성추행한 사실’ 사이의 연관관계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2차가해에 대한 고민들
나는 해당 논란을 보면서 2차가해라는 용어의 내용을 보다 세분화하여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주의 진영에서도 이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있었던 것을 발견했다. 여성민우회에서는 2017년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진행 하였는데, 권김현영은 ‘2차가해’와 ‘피해자중심주의’의 오용과 관련한 발제를 한다. 외부인인 우리가 구체적 사건에 있어서 판단을 하기 어려운 이유[2]에 대해서도 발제문에서 나와있다.
권김현영의 발제문에서는 당초 ‘2차 피해’라는 개념에서 파생된 ‘2차 가해’라는 개념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2차 피해’는 1차 피해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문제를 지칭하는 말이며, 구조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지만 ‘2차 가해’는 누가 가해자인지에 대한 문제에 집중해 구체적 행위자에 대한 문제로 특정하는 힘을 갖는다고 말한다. 권김현영은 그 힘이 너무 강해서 오히려 1차 피해에 대한 조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가 있고, 정작 가해자가 사라지고 피해자가 고립되는 경우도 있어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이다.
이러한 입장에 대해서 검토하다가 ‘스탑 다연’페이지가 ‘2차 가해’ 집단으로 다연을 지목한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대립되고 있는 양 당사자 모두 이에 대해 검토하고 있지 않으므로, 나도 딱히 이 사안에 대한 판단에 있어 이를 고려할 필요를 크게 느끼지는 못하게 되었다.
- ↑ B의 사실진술
- ↑ 이 글에서 왜 구체적인 사건을 언급하지 않는지에 대해 묻는 이도 있었다. 개념 정의를 위해 구체적인 개별 사건에 개입하지 않고 추상화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 성폭력 관련 처리 절차들은 ‘피해자 보호’라는 원칙에서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 위한 정보접근을 차단한다. 그 결과 사건해결과정에서의 구체적인 맥락을 최대한 삭제하고 징계위원회의 결정문만을 회람하는 경우가 많다. 사건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처리 절차 ‘내부’에 있어야만 한다. 처리 절차 ‘외부’에 있는 사람은 사건에 대한 판단 자체를 하기 어렵다. _ 2차가해와 피해자 중심주의 토론회 자료집. 48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