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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라이트 비판 김기협 지음/돌베개 |
I. 역사와 정치
『김기협의 역사에세이 – 뉴라이트 비판』이다. ‘뉴라이트’ 비판이라는 정치적 작업에 역사 에세이라는 수식이 붙는다. 그만큼 역사와 정치가 떨어질 수 없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다. 또한, 애초에 정치운동이었던 뉴라이트가 역사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한 사회적 맥락과도 관련되어 있는 서적이다. 저자는 책의 맨 첫 페이지에 “과거사의 탐구는 아득한 옛날부터 정치적 의미를 강하게 띈 활동이었다.”라고 서술한다. 문자시대 이전부터 제정일치라는 정체(政體)가 등장하는 이유 또한 주술사의 행위가 그 부족이 공유하는 기억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인상 깊다.
저자는 역사학의 정치적 기능을 강조한다. 그렇다면,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우리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이 순전히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졌을 뿐이고, 학문적으로는 무의미하다.’고 치부해 버릴 수 있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현실과 학문의 관계는 단순히 학문에서 현실로, 혹은 현실에서 학문으로 영향을 주는 단순히 일방적인 관계는 아니다. 저자는 역사학의 발전 역시 정치적 필요로 촉발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그러니까, 뉴라이트의 역사관이 순전히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졌을 수도 있으며, 순전히 정치적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 진 것 이라 할지라도, 그것 또한 학문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문제인식을 갖는 부분은 어디일까? 다음을 보자.
뉴라이트 역사관의 부실은 뉴라이트 정책노선의 부실과 맞물린 것이다. 뒷받침하려는 정책 노선이 건실한 것이었다면 이처럼 부실한 결과를 얻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뉴라이트 역사관이 제대로 된 역사관인지 따져보는 작업은 뉴라이트 정책 노선이 제대로 된 것인지 따져보는 의미를 동시에 가지지 않을 수 없다. _ 책, 8.
현 정권의 정책노선이 ‘부실’하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역사적 상황에 맞지 않는 방향을 가리키는 것일 뿐 아니라, 나아가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기 때문이다. _ 책, 9.
이 같은 부분을 통해서, 뉴라이트의 정치적 측면, 역사적 측면에서 전방위적 비판이 행해지는 책의 내용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II. 뉴라이트와 우파적 개념들의 역사적 맥락
뉴라이트의 등장과 그들이 사용하는 개념 또한 역사적으로 형성된 것 들이다. 정치적 맥락에서 사용되는 개념들이라는 것이 순수하고 명징한 개념이 아닌 경우가 많은데, 뉴라이트가 민족주의와 좌파를 등치하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원래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민족주의가 우파의 원동력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민족주의가 우파에게 있어서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에서 무엇보다 흥미롭게 볼 수 있는 것은 뉴라이트가 자주 보이는 태도들인 친미, 친일, 신자유주의, 반공 이라는 개념들이 한국사회라는 특수한 지형에서 어떻게 의미연관이 되는지 역사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는 것이다. 본인이 읽기에는 해방기의 미국이라는 변수가 이 개념들이 정치적으로 비슷하게 이용될 수 있게 하는데 큰 요소였던 것 같다.
미국은 일본과 피터지게 싸웠지만, 전쟁이 끝나고 나자 일본 제국의 반공 전통을 요긴하게 여기는 입장이 되었다. 천황제를 존속시키는 등 일본의 개조를 최소한으로 한 것도 그 까닭이었다. 일본의 지배를 받던 한국에도 일본의 통치 체제를 최대한 되살려내는 것이 미국의 기본 방침이었다. _ 책, 86.
소련과 대치되는 미국의 반공정책은 일본의 그것과 결합되어, 소위 ‘역사청산’이라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만들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민족주의자들의 친일 청산 요구는 반공의 정신을 유지시키는 그것에 대한 대항이었으며, 좌파와 빨갱이와 민족주의는 등치되는 의미로 우파에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III. 주류 역사학계에 대한 비판
이 책은 뉴라이트의 역사관에 대해서 격렬하게 비판하지만, 주류 역사학계의 민족주의적 편향성에 대해서 비판하기도 한다. 뉴라이트의 역사관은 그들이 어떤 역사관을 펼치는 지와는 별개로 민족주의적 편향성에 대한 비판의식을 어느 정도 담고 있다. 저자가 비유하기에 한국은 일제수탈의 “유·소년기의 트라우마”를 해결하지 못해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지” 못한 상태이다. 저자는 일제를 “천사도 아니고 악마도 아닌 인간으로”이해해야 우리의 눈길도 안정을 얻을 것이라고 역설한다.
무엇보다 인간이 오류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서술하는 부분이 인상 깊다. 비록 비판지점은 수탈론을 지지하는 주류 역사학계이겠지만, 누구라도 생각해 볼만 하다.
수탈론을 지지해온 연구와 논설 중에는 지적 나태를 보여주는 것이 많다. 민족의 피해를 따지는 데 다소 과장하는 잘못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정의로운 오류’이기 때문에 용서받을 수 있다는 무비판적 분위기가 언론계만이 아니라 학계에까지 만연해 있었다.
인간이란 원래 오류를 저지르는 존재라고 한다. 따라서 오류는 도움을 줄 대상이지, 처단할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정의로운 오류’는 용서해서 안 된다. 정의란 주관적 가치관에 근거를 둔 것인데, 이것으로 객관적 사실을 재단한다는 것은 대단히 질 나쁜 폭력이다. 파시즘의 길을 여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의로운 오류’는 정의 자체를 망가뜨린다. 오류를 품은 정의는 활인活人의 칼이 아닌 살인의 칼이다. 살인의 칼이 당장은 불의를 행하는 자들을 두려움에 몰아넣을지 몰라도, 정의의 의미에 조그만 흠이라도 드러나는 순간 진정한 날카로움을 잃고 자신을 공격할 새로운 정의를 불러내게 된다. _ 책, 147.
IV. 역사학계에 대한 대안제시지점
기존의 트라우마에 휩싸인 역사학을 구제하려면 어떠한 방식을 사용해야 할까? 저자가 보기에 뉴라이트의 강압적인 방법은 결코 아니다. 저자는 민족과 민족이 대립하는 우리와 같은 사례인 이스라엘의 경우를 예로 들며, 절차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데, 내가 읽기에는 지속적인 연구와 꾸준한 대화가 그 구체적인 내용인 것 같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가 보자. 평화를 지향하는 수정주의 역사관은 1980년대 들어 이스라엘 역사학계의 일각에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초기의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매국노, 반역자로 몰렸다. 그러나 학자적 양식과 지성인의 양심에 따라 이 방향 연구가 쌓이고 넓혀진 결과, 1990년경까지 학계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역사교육에 수정주의를 적용하는 작업이 1994년 시작되어 1999년 교육 현장에 나타나게 되었다. 20년에 걸친 차분한 전진으로 역사교육의 새 원리를 안정시킨 것이다. _ 책, 197.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뿐만 아니라, 기존의 역사학계에게도 요구하는 태도가 있다. ‘진보’적 학자에 대한 저자의 정의가 눈에 띄는 대목이다.
뉴라이트 측에서는 근현대사와 관련해 학계 주류를 ‘좌파’라 몰아붙이지만 내가 보기에 학계 주류는 ‘수구 보수’다. 기존 민족주의 패러다임의 정상상태normal state를 유지하려는 성향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패러다임 전환을 심각하게 모색할 때가 되었다. 하루아침에 패러다임을 내다 버리라는 것이 아니다. 기존 패러다임의 한계에 대한 진보적 학자들의 지적을 적어도 귀담아들을 필요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뉴라이트가 ‘좌파’로 지목하는 이념성 강한 학자들을 ‘진보파’라 부르기도 하지만, 내가 여기서 ‘진보적’ 학자라 함은 이념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모색하는 노력을 가리킨다. 지금 상황에서는 ‘탈이념’을 학문적 진보성의 주된 지표로 보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정치에 충분히 반영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민족주의의 관철에 정치적 진보성의 의미가 있지만, 학술과 사상에서는 민족주의 이후를 모색할 필요가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_ 책, 153.
V. 마치며
앞서 말했듯이 이 책은 에세이 묶음이다. 18개의 에세이를 구성한 책인데, 그 에세이들은 서로서로가 연관되어 있지만, 주제별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에, 책 한권을 전체로 읽을 필요 없이 한 부분씩 잘라서 읽어도 무방해 보인다. 버스에서 한 파트, 잠자기 전에 한 파트 읽으면, 쉽게 술술 읽힐 수 있는 쉬운 책이다.
무엇보다, 뉴라이트의 책『해방 전후사의 재인식』과 『대한민국 이야기』등을 저자가 직접 인용하며 조목조목 비판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뉴라이트의 인간관 대미관 대북관 국가관 등등 여러 부분에서 조목조목 따지지만, 저자가 핵심적으로 비판하는 부분은 인간을 ‘이기적인 동물’로만 규정하는 뉴라이트의 인간관과 ‘신자유주의’를 신봉하는 그들의 정책노선이다.
정치 이념은 역사관에 근거를 두는 것이다. _ 책, 206.
역사관이라면 역사의 일부분을 보는 눈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보는 눈이다. _ 책, 207.
역사관의 기초가 되는 것이 인간관이다. _ 책, 207.
저자의 가장 근본적인 인식은 인간관을 기초로 하는 것 같다. 역사학 또한 인간에 대한 이해로 바라보고 정치는 역사관을 기본으로 하며, 그 역사관은 인간관이 기초한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또한 신자유주의의 인간관에 대한 저항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