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활동보조가 아니라면, 장애인 이용자들은 자원봉사자만 구해서 삶을 꾸려야 한다는 말씀인가요. 그런 말씀이 아니라면 활동보조인의 권리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은 타인의 보조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취지로 제도가 생겼다는 말씀도 동의합니다. 하지만 저는 어떤 ‘도리’를 말하기 보다 우리를 좌절하게 하는 현실을 말해보고 싶습니다. 약자를 돕는 ‘최소한’의 행동이라고 말씀하시지만, 인간의 선의에 기대서는 그 ‘최소한’도 기대할 수 없으며, 마치 이것을 증거하듯이 장애인의 삶은 내버려져 있습니다. 그런 현실적 바탕에서 장애인들은 차라리 국가가 재원을 구성하고 사람을 구성해 달라고 요구하게 되었고, 장애인운동 활동가들의 투쟁 위에서 생긴 것이 활동보조인 제도입니다. 정말로 이상적인 사회라면 이런 ‘계약’이 바탕되지 않은 선의로도 장애인이 충분히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활동보조노동을 하는 분들 또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힘들게 유지해 가고 있는 또 다른 민중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장애인들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 처럼, 활동보조인들 또한 생활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합니다. 정말로 여유 있으신 분들이었다면, 자신이 여유 있는 시간에 마음의 기쁨을 위해 ‘자원봉사’를 하러 다니셨겠지요. 아니면 장애인의 삶 따위는 관심없는 사람이었겠지요.
활동보조인의 책임을 말하기 이전에 활동보조인이 무엇을 책임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이 빠진 것 같습니다. 활동보조인은 중개기관과의 관계에서는 근로계약서상의 을로, 장애인이용자와의 관계에서는 서비스제공자로 약자의 지위에 있습니다. 단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관계가 아닙니다. 활동보조인이 일으키는 문제는 중개기관에서 혹은 정부가 저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활동보조인에게 장애인 이용자가 행하는 부당한 처사에 대해서는 어떤 제도적 장치가 있나요.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열악한 노동조건입니다. 더불어 불안정한 비정규직입니다. 보건복지부는 최저임금조차 주기 싫어서 재능 학습지 노동자 같은 특수고용직 종사자 아니냐며 노동부에 문의합니다.
활동보조하다 허리라도 다치면, 장애인이 사회에서 필요 없다고 버려지는 것 처럼, 활동보조인도 장애인 이용자로부터 버림받게 됩니다. 열악한 노동조건이다 보니 남성 활동보조인은 얼마 되지 않으며, 대부분이 여성 활동보조인입니다. 앞서 말했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부당한 행위들을 제지하는 제도적 장치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장애인 이용자의 곁을 오래 지키는 활동보조인이 얼마나 될까 궁금합니다. 정말로 활동보조가 ‘직업’이 아니라면,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정말 ‘선의’만을 기대하는, ‘도리’로만 으로도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꿈꿔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그런 삶을 구성할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활동보조라는 직업이 매력적인 직업인 사회, 근로조건이 좋아져서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활동보조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세상이 온다면 지금처럼 활동보조인이 부족해서 불안한 장애인은 없어질 것입니다. 제가 활동보조인으로서 꿈꾸는 사회는 그런 사회입니다. 전국 곳곳에서 개별적으로 신음하고 있을 활동보조인들을 위해, 이제서야 드디어 활동보조인 노동조합이 생겼습니다. 누구라도 하고 싶은 활동보조인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첫걸음입니다. 활동지원제도의 원 취지가 장애인을 위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누군가를 고통스럽게 한다면 바뀌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함께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