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개정에 따른 특례조항 폐지로 현장이 혼란스럽다. 다시 특례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일부 있는 상황.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글도 올라온다. 이에 대한 설명을 하여야 겠기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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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기준법 개정과 관련하여
안녕하세요. 전국활동지원사노동조합 사무국장 전덕규입니다.
근로기준법이 개정되었습니다. 개정으로 인해 발생하는 변화에 대해서 여러 혼란이 있을 줄로 압니다.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노동조합의 활동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계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에 관해 설명이 필요할 것 같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 근로기준법의 변화내용, 바뀐 이유
지금 현장에 직접 영향을 주는 것으로 거론되는 조문은 59조입니다. 근로기준법 59조는 근로기준법에서 규정하는 근로시간 및 휴게시간에 관한 적용을 배제하는 예외조항입니다. 이 예외조항의 존재는 몇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먼저 근로기준법은 ①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②고용주가 노동자에게 휴게시간을 주도록 강제하고 있다. ③몇몇 산업의 경우 앞의 두 원칙의 예외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몇 가지 질문이 가능합니다. 왜 근로기준법은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할까? 왜 휴게시간을 주도록 강제하고 있을까? 이런 근로기준법의 원칙이 생긴 이유는 사실 59조가 개정되게 된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 이전에 근로기준법이라는 법 자체의 존재 근거와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번에 개정된 59조는 저절로 개정된 것이 아닙니다.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의 요구가 있었기에 개정된 것입니다.
59조 특례조항은 많은 사회적 문제가 되었습니다. 버스운전사의 졸음운전으로 인한 고속도로 버스추돌사고, 연달아 과로사한 집배원들 또한 이 특례조항에 해당하였습니다. 우리는 장시간 근무가 특례로 허용되면, 시민의 안전과 노동자의 생명이 위협받음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는 비단 59조에 한정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근로기준법이 규율하고 있는 내용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이야기들입니다. 산업현장에서의 안전문제, 유급휴일을 비롯한 법정수당, 휴가의 권리, 직장 내 성희롱 문제 등등. 개인과 개인 간의 자유로운 계약으로 내버려 두었을 경우, 사회 전반적인 해악이 크기에 자유로운 계약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강제적으로 규율하는 것이 근로기준법의 내용입니다.
● 고용주의 입장에서 이번 특례축소가 반길 일일까?
근로기준법의 적용은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반길 일이 아닙니다. 적당히 시급만 주고 때울 수 있는 일도 각종 법정수당을 줘야 하니 귀찮은 일이지요. 휴가를 보내는 것도 이를 대신할 사람을 구해야 하고, 근무표도 짜야 하니 귀찮은 일 일색입니다. 근로기준법의 적용 자체가 그러하기에 각종 산업의 고용주들은 자신의 산업에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피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실질적으로 하는 일은 노동자와 똑같은데, 노동자로서 보호를 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가 이러한 예입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현금지급제’, ‘활동지원기관 무용론’ 등이 이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겠지요. 이에 대해서 노동조합은 다양한 방법으로 반대의견을 내었습니다만, 오늘은 근로기준법 개정에 관한 이야기이니 크게 언급은 않겠습니다.
근로기준법 적용 일반에 대해서도 이처럼 갖은 방법으로 법 적용을 피해갑니다. 사정이 이러한데, 이번에 특례업종에서 빠진 고용주들의 심정이야 오죽할까요? 특례에 어떤 산업을 넣느냐 마느냐는 사업주의 이익이 담긴 논쟁적인 사안입니다. 따라서 특례산업 인정 여부에 관해 각 산업의 고용주들이 어떤 주장을 할지는 아주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우리 산업은 특수성 혹은 업무특성 때문에 특례조항에 넣어야 한다.” 그렇다면 활동지원현장은 어떨까요? 제가 모든 사회복지 분야의 고용주들이 어떤 의견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회복지사업의 ‘진짜 사장’이라고 할 수 있는 보건복지부가 무슨 의견을 냈는지는 알고 있습니다. “사회복지사업의 특례적용 제외에 반대한다.” 결론적으로 현재 활동지원사업의 특수성을 들어 근로기준법 개정을 비판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의 주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 활동지원사의 특수성
앞서 설명해 드린 것처럼, 근로기준법은 해당 사업을 운영하는 고용주의 사정과는 별도로, 노동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여러 강제조항을 만들어 둡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이런저런 법을 지키는 것이 모두 비용입니다. 자유롭게 허락된 장시간 노동과 마음대로 조율할 수 있었던 휴게시간을 통해 자신의 사업에 맞는 노동력을 자기 마음대로 공급받을 수 있었던 고용주들은, 개정된 근로기준법에 맞추어 더 많은 인력을 고용하거나, 작업방식이나 근로시간을 바꾸는 등 노무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고용주로서는 제도개선에 대한 비용을 추가로 들여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개정되었습니다. 고용주의 이익보다, 법 개정을 통해서 노동자를 보호하는 것이 더욱 옳다는 판단 때문이지요. 다시 거듭 말하지만, 근로기준법 개정은 개정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산업상의 제도개선, 작업방식이나 근무환경 변화 등을 초래하고, 이러한 개선비용에 대한 책임을 고용주에게 부과하고 있습니다.
활동지원을 비롯한 사회복지사업은 “복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는 철학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사회복지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노동권을 크게 보호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특히나 사회복지사업이 59조의 특례에 속하게 되는 방식은 타 산업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다른 산업의 경우 국회의원의 입법으로 법률로 규정되어 왔지만, 사회복지사업은 유일하게 대통령령으로 규정되어 왔습니다. 국가의 수장이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일을 노동자에게 시키는데, 그들을 사용함에 있어 법 적용의 예외를 자신의 마음대로 정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지요. 고용주가 근로기준법을 자신에게 적용할지 말지를 정하는 꼴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것은 너무나도 열악한 사회복지 현실입니다. 활동지원을 비롯한 사회복지 종사자 대부분이 여성이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저임금 불안정 일자리를 양산한 채, 이 노동을 여성들에게 떠넘깁니다. 또 사회적 약자를 대한다는 이유로 노동자에게 선의와 봉사, 희생을 요구하는 인식이 만연한 것이 우리 사회복지의 현실이지요. 선의와 봉사에 기대어 서비스를 받는 대상자들은 결국 시혜와 동정의 대상으로 전락할 뿐입니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은 사회복지사업에 있어 정부의 자의적 판단의 고리를 끊은 진일보입니다. 더 이상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특례산업은 없습니다.
● 노동조합의 투쟁과정은 활동지원사에게도 노동법의 예외 없는 적용을 주장해 온 것
몇 년이 지난 사안이라 기억은 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활동지원사의 경우 처음에는 야간이나 휴일 수당 자체가 없었습니다. 아니, 사실 그 이전에 활동지원사가 노동자인지도 몰랐지요. 활동지원제도를 도입한 정부 관료들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에 대해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초기의 활동지원제도는 정말 말 그대로, 시간급만 주고 적당히 때우는 모델로 구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노조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활동보조인권리찾기모임, 활동보조인연대를 비롯하여 많은 활동지원사들의 투쟁으로 활동지원사의 노동자성은 인정되었습니다. 또 제도를 시행한지 5년이 지난 2012년이 되어서야 휴일/야간 수가가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그것도 고작 1000원으로 책정되었습니다. 지금처럼 50%의 가산수가가 붙기 시작한 데에는 또 2년이 지나야 했습니다. 결국, 이마저도 장애인이용자의 바우처가 차감되는 방식이긴 하지만, 노동자 권리에 대한 주장이 일정부분 제도에 반영된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까지 오는데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고 많은 투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노동자의 권리주장을 탄압하는 논리들은 일관적이었습니다. “활동지원사는 그 노동형태가 특수하기 때문에 노동자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 “활동지원사는 제도의 구조적 한계가 있기 때문에 법정수당을 줄 수 없다.” “활동지원사는 현장의 특수성 때문에 휴가의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 등등. 활동지원사의 노동권 주장에 대한 탄압자들의 논리는 거의 매번 어떤 특수성에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만약 이러한 특수성이 인정된다면, 활동지원기관은 활동지원사에 대한 노동자의 권리를 의식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정부 입장에서는 수가를 인상해야 할 이유 또한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노동조합의 입장은 일관적이었습니다. 활동지원사도 노동자다, 특수성의 미명 하에 권리보장에서 배제하지 말라. 활동지원사에게 노동자 권리 보장하라.
● 대책 마련의 일차적 책임은 정부에 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복지는 국가가 책임져야 하고, 국가는 진짜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다른 산업에서도 근로기준법이 개정되면 노무제도를 개선해야 하고, 이에 드는 비용은 당연히 고용주가 책임지게 됩니다. 하지만 활동지원제도는 애초부터 근로기준법을 어기는 구조로 제도가 도입되었고,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보건복지부는 제도개선에 대한 대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습니다. 활동지원기관에 근로기준법 개정 사항을 기계적으로 알리는 것에 그칠 뿐이지요. 이는 다르게 말하면 제도개선에 드는 비용이나 대책 마련을 국가가 책임지는 방식이 아니라, 법률적 고용주인 활동지원기관에게 떠넘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부 활동지원기관은 활동지원사에게 무급노동을 강요함으로써 이를 해결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노동조합은 중증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기 위한 활동지원제도의 당초 취지와 목표를 실현하고, 또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습니다. 활동지원제도 자부담 폐지, 24시간 활동지원 보장, 노동자에게 보장되지 못하고 있는 각종 법정수당, 휴가의 권리, 안정된 일자리, 전담인력을 비롯한 활동지원사의 국가 직접 고용 등등. 근로기준법 개정 이전에도 사회서비스의 공공성을 확보하기 위해 투쟁해 왔습니다. 그래서 노동자의 휴게시간 보장과 노동시간 축소로 인한 장애인이용자들의 우려 또한 익히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법이 노동자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방식이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보장되어야 할 권리를, 특수성이라는 이름으로 배제하는 논리를 받아들일 때, 이 사회에 차별과 혐오의 싹이 자라난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사회의 진보는 특수성이라는 이름으로 배제된 이들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활동지원사를 특례업종에 넣으라는 주장에 단호히 반대합니다. 근로기준법 59조의 완전한 폐지를 원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최저임금의 권리를 박탈하는 최저임금 적용제외 제도의 폐지를 원합니다.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을 기회로, 활동지원제도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노동자가 희생함으로써 유지되는 복지가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라는 당초 제도의 취지를 실현해야 합니다. 중증장애인에게 끊김 없는 서비스를 보장하기 위해서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지금처럼 활동지원사가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고, 소진되어 단시일 내에 이탈하는 일이 없어져야 합니다.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인한 제도개선 대책 마련과 비용을 정부가 모두 책임져야 합니다.
● 노동조합도 대책 마련 및 요구를 고민할 것
이를 위해서는 당연히 노동조합의 투쟁도 잇따라야 할 것입니다. 정부가 대책을 마련하도록 지속해서 투쟁하겠습니다. 그리고 무엇을 요구할 것인지 노동조합도 고민하겠습니다. 이번 총회에서 사업으로 이야기된 제도개선 연구사업이 그 내용입니다.
저는 이번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한 현장의 혼란이 노동자의 권리와 장애인의 권리가 충돌하는 사례로 이해되지 않길 바랍니다. 모든 노동자에게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가 왜 활동지원사에게만 보장되지 않는 것일까요? 이 같은 현실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요? 이 모든 혼란의 원인은 보건복지부가 국가책임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을 모색하는 책임을 지지 않기 때문이며, 이에 수반하는 예산에 대한 책임 또한 회피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입니다.
지난 기자회견, 기자회견문 마지막 요구 내용을 다시 상기하며 글을 마치겠습니다.
– 정부는 노동자와 장애인 모두의 권리를 보장할 근본적인 제도개선 대책을 제시하라.
– 활동지원기관은 활동지원사에게 무급노동을 강요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