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유지를 위한 개별지침’에 관한 주저리

보건복지부 장애인서비스과에서 발표한 코로나 지침은 제목이 “장애인활동지원 서비스 유지를 위한 개별지침”이다.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순히 “서비스 유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 지침에는 장애인이 자가격리 대상인 경우 격리시설을 이용하거나 격리시설을 이용할 수 없을 때, 자택에서 자가격리 하도록 지침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격리시설은 어떻게 마련되고 인력은 어떻게 확보되는가? 그에 대한 구체적은 내용은 없다. 시-도에서 알아서 격리시설을 확충해야 하며, 알아서 ‘격리시설 운영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여기서 결국 중요한 것은 인력의 확보일텐데, 중앙정부는 그에 대해서 지원은커녕 어떻게 하라는 기준조차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지침에서 언급하는 바로 시-도에서 인력을 확보하는 방안은 “시·도 유관기관, 단체 등에 협조 요청”하는 것이 전부이다. 결국 중앙정부차원의 지원은 없고,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도 스스로 어떻게 할 바가 없으며, 유관기관이나 단체. 다르게 말하면 민간기관에 협조요청하는 방법 밖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중증장애인이 격리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까? 격리시설은 격리시설 그 자체로 고립을 의미하기에 중증장애인 입장에서는 어려운 선택지이다. 그런데 그 격리시설에서조차 중증장애인은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말한것처럼 중앙정부와 지자체 차원에서의 인력확보 방안은 없고 순전히 민간에 의존해 있다. 그렇다면 중증장애인에게 충분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 뻔하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자가격리 대상임에도 ‘격리시설’이 아니라 ‘자택으로의 자가격리’로 분류하는 기준은 “장애 유형 및 정도와 상황”이라는 자의적 기준이 전부이다. 장애정도에 대한 기준도 없고, 격리시설의 상황이라는 것은 인력부족이 뻔해보이는 상황에서 격리시설이 중증장애인을 수용할 능력이 있을 가능성은 아주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용한다면, 한 노동자가 담당해야할 중증장애인의 수는 수용시설의 그것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참으로 아찔한 것은 지금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는 대구에는 격리시설 조차 없다는 것.

그렇다면 결국 자가격리 대상이 된 중증장애인은 자택으로 내던져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활동지원사는 어떻게 파견될까? 정부지침에서는 불가피하게 가족이 서비스를 제공할 경우 기존 활동지원사와 동일한 임금을 지급한다고 하지만 이게 대책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하는 것은 입만 아프다. 이미 해당지침이 가정하고 있는 것처럼, 가족이나 동거인만 홀로 격리대상자가 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 다른 사람을 구해야 하는데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울게 뻔하다. 최저임금과 근로기준법상의 법정수당조차 지급 못하는 저임금에, 시급제 불안정노동에 시달리는 활동지원사들에게, 장애인이용자가 격리대상임에도 사명감을 가지고 재난상황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라고 강요할 수 있을까? 물론 현장에는 사명감을 가진 활동지원사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미 제도화 된지 10여년이 지난 지금에는 초기의 열정과 사명감을 지닌 활동지원사들은 이미 현장에서 대부분 떠났거나 노동자이기보다 활동가이신 분들이 더 많다. 혹여나 그러함에도 근무투입에 동의한 활동지원사가 있다면, 재난이 지나간 이후에 있을 자신의 일자리에 대한 불안 때문에 동의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런데 정부의 지원은 어떠한가? 보건복지부는 자가격리 대상이 된 중증장애인에게 24시간 활동지원 ‘바우처’조차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기존의 ‘보호자 일시부재 특별급여’나 ‘긴급지원급여’를 지급하라고 하지만, 그 결정도 결국 시-도에서 알아서 판단할 일이다. 그리고 현장의 지자체 담당자들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 위험수당을 더 줘도 모자랄 판국에, 함께 격리되어 안전대책조차 없이 장시간의 노동을 하는데 그 노동이 무급노동으로까지 이어질지도 모르는 아찔한 상황에 선뜻 근무투입을 동의할 활동지원사는 없을 것이다.

근무를 들어가지 않아도 문제다. 하다못해 신천지라는 이유로 장애인이용자가 서비스를 거부한 사례도 있다. 활동지원사는 서비스를 거부당하면 일을 못하고 수입이 사라진다. 노동조합 조합원이라는 것이 드러나면 노동조합 조합원이라서 부담스럽다고 서비스를 거부하기도 했다.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장애인이용자가 서비스를 거부하면 생계가 불안정해지는 제도.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자의 안정성을 희생하고 국가책임을 방기한 채 민간에 내던진 제도. 그것이 현재의 바우처 제도이다.

필수유지업무라는 표현을 들었다. 재난이 다가와도 유지해야하는 업무들. 활동지원은 중증장애인에게 있어서 생명과 같은 제도라고 말들 한다. 감염병이 유행해도 유지되어야 하는 필수유지업무이다. 그런데 이런 제도가 민간에 내맡겨져 있다. 바로 2018년까지만 해도 공공운영이 0% 였다. 그리고 그 한계가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공포상황이다. 국가가 아니라 우리가 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자만하던 사회적경제와 자립생활운동진영은 감염병 재난 앞에서 겸손해져야 한다. 국가만 할 수 있고, 국가가 해야하는 일이다. 사회서비스원을 비롯하여 공공성 확충을 위한 움직임들이 코로나19 이후에도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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