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고사직 수용 안해서 해고했다는 인권위 토론회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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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사 보면 전장연이나 비마이너에 시장화정책에 대한 문제 인식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느낀다. 그들의 풍경이 노동이나 운동의 풍경이 아니라 자본의 풍경으로 잠식되고 있다 느낀다.

얼마 전부터 그렇다. 따지고 보면 설요한 활동가에 대한 임금반환이나 장애로 인한 업무상 고충에 대한 미해결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사업주가 비판받아야 한다. 노동자에게 임금반환을 요구하는 주체는 정부가 아니다. 제대로 따지면 정부는 사업수행을 조건으로 사업비를 지급할 것을 계약한 것이고 사업수행을 못 했기 때문에 계약불이행으로 인해 사업비를 돌려받는 것이다. 반면 근로계약은 성과를 중심으로 맺는 게 아니고 주어진 시간 동안 성실히 하면 된다. 그런데 임금반환이라는 불법적 요구는 누가하는가? 사업주이고 센터장이다. 그렇다면 자살에 이르게 한 그 괴롭힘은 누가 수행했나? 사업주이고 센터장이다. 그러면서 장애인 운동은 정부 탓했다. 국정감사에서 불법이라 말한 임금반환 요구의 주체는 센터장이다. 그런데 그런 부분을 짚지 않고 보도한다. 노동에 대한 관점이 결여되어 있다.

얼마 전에 2급심에서 활동지원사를 대상으로 임금채권포기각서를 강요한 사업주에게 유죄판단이 내려졌다. 해당 대표이사가 대법에까지 상고하면서 전개한 논리는 ▲정부의 지원이 부족하기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이야기였다. 상고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법원이 활동지원기관의 사정을 고려하지 않았기에 다른 기관들을 대표해서 싸우는 심정으로 대법원에 상고했다고 말했다고 전해 들었다. 이곳은 복지재단이고 진보적 장애인운동과 무관한 곳이다. 여러 복지사업을 거느린 차라리 ‘복지 마피아’라는 명명이 어울릴 곳일지도 모른다. 이런 곳도 정부 핑계 대면서 노동 탄압한다.

자본이 노동을 해고하는 것이 규탄되는 건 거대자본만 그런 게 아니다. 권고사직은 노동자가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어쩌면 사용자가 사직을 권고한다는 것은 노동자를 해고할 명분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기도 하다. 그런데 권고사직을 받아들이지 않아 해고했다? 그래놓고 양대 노총에 연대를 요청한다? 참 어이가 없고 속 편한 말이다. LG 자본이 코로나 핑계 대며 청소노동자 대량해고하고 정부의 미비한 코로나 지원책을 탓하면 그게 수긍이 되나? 아시아나케이오 박삼구 같은 자가 “자 같이 대정부 투쟁을 합시다.”라는 말을 하면 수긍이 되나?

노동자가 원청에 요구하는 말로서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는 요구와 하청업체 사장이 “진짜 사장이 책임져라”고 말하는 것은 문자 그대로는 같은 말이지만 의미가 다르다. 전자는 진짜 권력에 책임지라고 요구하는 저항의 말이나 후자는 진짜 사장이 책임져야 할 일이지 내가 책임질 일은 아니라는 책임회피용 핑계일 뿐이다. 원청은 하청이 이렇게 말할 것을 알고 하청구조를 유지한다. 하청은 이런 방식으로 원청이 기대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기존 구조에 복무한다. 원청도 하청도 책임지지 않는 상황에서 노동자의 권리만 사라진다. 원청은 책임지지 않는 애초의 목표를 쉽게 달성한다. 하청은 원청 핑계 대며 책임은 지지 않는다.

정말 민간으로서 한계라 느낀다면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민간주도의 탈시설 정책 기조 자체에 저항하고 국가가 탈시설과 노동 모두를 책임지게 만들어야 한다. 민간 사회복지 사업자로서 고용 승계 계획도 없이 사회복지산업 구조조정하고 해고하면서 정작 노동조합에 대책 요구하고 사회연대 이야기하고 고통 분담 요구하는 태도는 자본가들이 많이 취했던 태도다.

운동초기 사회서비스 시장화 정책에 일말의 비판의식이라도 남아있던 전장연이 더는 아닌 것 같다. 정부예산확보투쟁 이후 정부하청사업자로 자리 잡고, 중간파견업체로 적당히 먹고살면서, 노동자 쓰고 버리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결과는 여성, 외국인노동자 그리고 고령화되어 가고 있는 돌봄 노동시장이다. 이런 식이면 장애 해방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노동은 점점 축소될 수밖에 없다. 그들이 광장에서 함께 외쳤던 ‘해고는 살인이다’에 사회복지 노동자는 없다. Leave no one behind 에 사회복지 노동자는 없다. 사회복지 노동자들은 시설정책을 유지한 구시대의 유물일 뿐이고, 탈시설 정책을 가로막는 치워져야할 장애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이 장애를 해방하나? 정말 차라리 노동자가 사라지고 기계가 대체하는 세상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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