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동씨의 폭로에 대한 메모

활동지원사를 하다보면 나도모르게 갖고 있던 어떤 선입견을 깨게 된다. 언제는 같은 시설에서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모여 있었는데, 시설에서 같이 나왔다길래 나는 별 생각 없이 한 장애인에게 물었다.

“시설에서도 같이 있었으면 서로 친하겠네요?”
“아니 별로 안친해. 저 형 시설에 있을때 나 엄청 팼어.”

사회의 시선으로부터 괴리된 시설에서의 가해와 피해는 꼭 시설종사자와 입소생활자사이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때로는 입소생활자 사이에서도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뉘었다. 그리고 어쩌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은 헌신적인 장애인권운동 활동가들의 덕분으로 탈시설을 시도하게 되었고, 삶의 어려움은 있으나 자유로운 생활을 하게 되었다.

장애인권운동 활동가들은 어떤 거주인은 순수하게 피해자이고, 어떤 거주인은 때로는 폭행 가해자여서 누구는 지원하고 누구는 지원하지 않는식으로 그들을 가르지는 않았다. 시설 내부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의 문제와 인간이라면 갇혀살아서는 안된다는 당위는 구분되는 것이어서 탈시설 운동이 그런 것들을 따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착하고 순수한 인간 말고 비겁하고 구질구질하고 시시한 그냥 인간.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요.”

송곳에서 이수인이 사측의 부당한 징계해고 위기에 놓인 노동자를 지원하며, 그래도 노동자도 잘못한게 있지 않느냐며 내적 갈등을 할때, 구고신이 한 말이다. 순수하고 훌륭한 사람을 위한 연대가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한 시시한 연대. 나는 운동을 대하는 사람들의 이러한 태도가 다양한 분야에서 변주되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들을 억압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되어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가령 성폭행 피해자의 피해호소에 피해 그 사실에 대해 주목하여 다루지 않고 피해자다움을 검증하는 태도 같은 일들. 그리고 그에 동조하는 많은 사람들. 문명동씨의 폭로에 대응하는 몇 사람들의 태도는 짐짓 성추행 가해자에게 엄정한 잣대를 들이대는 친여성주의적 태도인듯 하지만, 피해자에게 순결함을 강요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게 반여성주의적이다.


문명동씨가 폭로한 내용(2020.06.22. 09:55)중 [ https://www.facebook.com/myungdong.mun/posts/3356186401082181 ], 사실주장과 관계된 부분에서만 정리해보자.

(1) 집안에서만 살다가 검정고시를 위해 처음으로 알게된 ‘노들야학’에서는 문명동씨에게 별다른 설명없이 문명동씨 명의의 통장을 요구했고, 그 명의를 이용해 얻은 금액을 문명동씨에게 전달하지 않고 야학 운영비로 편취하였다.
(2) 문명동씨가 ‘노들야학’에서 활동한 1년이 지나서 처음 받음 활동비는 10만원이었다.
(3)‘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개소 이후 정식고용관계가 되었으나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는 부당한 조건으로 근로계약이 이루어졌고
(4)‘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후원이 강요되었다.
(5) 몸과 마음이 지쳐 일을 그만두었으나 퇴직금을 받지 못하였고, 실업급여 일정금액을 기부할 것을 요구받았다.
(6) 이후 ‘장애인문화예술판’에서 근무하게되었는데 노들야학에서와 마찬가지로 통장을 개설해올것을 요구받았다.
(7) ‘장애인문화예술판’ 에서는 지급받아야 할 임금 전부를 주지 않고 일부를 운영비로 쓰고 나머지만을 지급했다.
(8) ‘장애인문화예술판’ 재직중,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에서 인턴사업이 선정되자 두가지 업무가 문명동씨에게 강요되었다.
(9) ‘장애인문화예술판’ 대표는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 인턴사업 월급을 ‘장애인문화예술판’에 기부할 것을 요구했다.
(10) 두가지 업무병행이 힘들어 ‘장애인문화예술판’을 퇴직하였으나 퇴직금을 받지 못했다.
(11) ‘장애인자립생활센터판’소장은 일하는 내내 문명동씨에게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일삼았다.
(12) 이후 사이버대학을 졸업하고, 다시 ‘장애인문화예술판’에 구직을 위해 갔더니 연극에 관련된 일 아니면 고용할 수 없다고 했다.
(13) 공고를 보고 다른 센터에 갔더니 문명동씨가 일할 당시의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전 소장이 “중증장애인들의 업무능력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말을 했다고 전해들었다.
(14) 또 다른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갔더니 인턴을 뽑는데 경력직도 힘들 정도의 업무능력을 요구했다.
(15) 뒤에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공고를 보고 면접을 보았는데 사무국장이 “요즘은 중증장애인을 안 뽑는 추세”라고 말하였다.

이 중 (12)를 제외한 모든 폭로는 문제적 사안이다. 사업주에게 고용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연극에 관련된 일’에서만 구인하고 있는 상황 자체는 문제삼기 힘들다—문명동씨는 의리없음 같은 것을 비난하고 싶겠지만—. 그 외에는

(1)(6) 중증장애인의 명의를 도용한 금품갈취
(2) 중증장애인에게 일을 시키면서 최저임금에 훨씬 미달하는 임금 지급
(3)(10) 퇴직금 미지급
(4)(5)(9) 노동자에 대한 후원, 기부강요
(7) 임금 중간착취
(8) 노동자에게 업무가중 강요, 동의받지 않은 노동조건 후퇴
(11) 사용자지위에 있는자의 직장내괴롭힘
(14) 사실상 경력직을 인턴으로 채용
(13)(15) 장애인차별발언

충격적이지 않은 것이 없다. 시설에서나 보던 수급비 갈취사건같은 일이 전장연 내부에서도 일어났다. 설사 그래도 ‘사익’을 위해서 쓰인 것이 아니라 ‘운동’을 위해서 쓰인 것인데 정당화 될 수 있는것 아니냐는 반론도 가능하겠다. 나는 이와 비슷한 관행을 대학원생들 인건비 회수 관행에서도 발견하는데, 대학원생들의 인건비를 회수한 대학교수들도 ‘사익’을 위해 쓴 것이 아니라, ‘학문발전’을 위해 썼다고 항변한다. 그런데 그렇다고 이게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중증장애인 최저임금 적용제외를 주장하는 단체라고는 믿기 힘든 임금수준에, 퇴직금 미지급은 당연히 안될 말이다. 사회복지노동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문제시되고 있는 후원, 기부강요가 이루어졌고, 주어야할 임금 금액이 있음에도 운영비로 갈취되었다. 노동자에게 동의받지도 않은 상황에서(물론 의사를 물었다 해도 거부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 문제는 문제다) 업무를 가중하여 노동조건을 후퇴시켰으며, 차라리 모욕적 언사와 경력직을 인턴으로 채용하는건 애교스럽다 하겠다.

가장 충격적인건 “요즘은 중증장애인을 안 뽑는 추세”라는 발언. 통계적 사실로 보자면 대한민국이 중증장애인을 채용하지 않는 추세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 다음에 차마 말해지지 않았지만 중증장애인 당사자라면 어떻게든 알아들었을 말. “그렇기 때문에 중증장애인인 너는 채용되기 힘들거야.” 그 말을 들은 중증장애인 당사자는 어떤 좌절감을 맛보았을까? 대기업의 인사권자가 면접을 보러 온 중증장애인에게 “요즘은 중증장애인을 안 뽑는 추세”따위의 말을 한다면 전장연이 앞장서서 집회를 열어야 할 사안이다. 그런데 이런 발언이 내부에서 있었다면 당연히 돌아보아야 할 일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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